살아오면서 이전에 많이 들었던, 많이 사용했던 간단한 단어들이 요즘은 조금씩 가슴으로 느껴지더라...
아마도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중 하나겠지...

...

그분과의 인연은 딱히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특별할 수도 있다고 해야하나... 단지, 막연하고 되도않는 이야기이지만....

어려서부터 내가 다녔던 교회는 명동성당 밑, 중앙극장 뒤편에 있는 교회다.
그 교회 역시 사회참여를 기조로하는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 성향의 교회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은 것(?)을 보고 자랐고, 덕분에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1980년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던 그때, 소위 '데모'라고 불려지는 것들이 성지(聖地)라는 명동 성당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 났었고, 그곳의 일요일 풍경은 무서운 전경 형님들과 백골단 형님들, 바삐 움직이는 묘한 무전기의 아저씨들, 그리고 골목 골목 빠져 나갈 수없는 검문, 검색이였다. (머... 나야 물론 나이가 있응게, 그닥 검문은 받지 않았지만서도.. ^^; 어린 마음에 검문을 받아보고 싶어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풀~)


시대를 슬퍼했던 주위 사람들을 보는 것이 마음 아팠던 그 시절. 지금의 나에게는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그 이름을 들어왔던 것은...
언제더라... 그때가...
왜 그렇게 명동 성당에서만 데모를 할까...라고 생각했던 때가...
그리고 그 대답으로 '명동 성당에는 전경들이 못들어 간다더라' 라고 들었던 때가...

그 후부터 그곳을 지키는 존재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요일마다 느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때였었지만, 왠지 마음이 든든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언자적 삶'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였다.
누군가로부터 '지킴'을 받았던 나로서는 단지 든든했었다는 기억밖에는...


이제는 그 '예언자적 삶'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조금, 아주 조금 느껴진다...  이제 그런 나이인가보다...
그 단어적 의미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그 긴 세월...어찌 견디셨을꼬...

'시대의 정신을 지켜왔던, 그 삶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이셨던' 이러한 수식어는 난 잘 모르겠다. 지식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단지, 우리가 사랑해왔고 사랑받아 왔던 또 한분을 보내드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길을 애도(哀悼)하기 보다는 축하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 '힘들었던 소풍'이 끝나, 이제 당신께서 바라마지 않으셨던 그분의 곁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이 어찌 축하해 드리지 않을 일인가...

마음은 아프지만...
세상이 어지러운 때라 가신다는 것이 너무 야속하지만...

즐겁게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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